Community 커뮤니티

마음지음 이야기

<知音서신> 제154호 '나의 상담인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조회 작성일 16-12-22 00:00

본문


 

 ********************************************************

 

사랑하는 KCGU 가족 여러분안녕하세요?

문자그대로 多事多難했던 2016년이 숨가쁘게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어수선한 정국에학기말에연말연시 준비에. . .   유난히 바쁜 듯한 요즈음입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왜 이렇게 세월이 빨리 흘러갔지시간이 마치 손가락 사이로 흐허내리는 모래처럼 사라져갔네. . ."라는 일종의 허무함과 배신감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하루 24시간 중의  단 일초도 쉬임없이 우리의 신체기관은 움직여주었고 해와 달과 별은 단 하루도 궤도를 벗어남 없이 계절마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을렀던 것은 단지 우리들 자신이었을 뿐. . .   앞으로 오는 시간은 그렇게 보내지 말아야지. . .  다시 때이른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에 나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에서 동문지를 출판한다면서 나에게 원고를 청탁했습니다  사대 국어과를 졸업하고 상담으로 전공을 바꾼 동문이라는 소개와 함께 내 글을 싣겠다고 하면서 A4 2장 분량으로 써달라고

해서 쓴 글을 여러분에게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상담인생

 

 

 

                                                                                             -이혜성(15회 졸업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

 

 

나는 1958년에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에 진학했다. 그해 사울사대 국어과의 경쟁률은 8대1이나 되었으므로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는 천하를 얻은 듯이 기뻤으나 대학교 신입생의 생활은 기대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2학년에 진급하면서, 뭔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의욕은 간절했으나, 교과내용이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양성하는 방향으로만 치우쳐있다는 불만이 컸다. 그러다가 3학년 때 4.19가 터져서 놀라고 불안했다. 그러나, 그 때 미국서 갓 돌아오신 김기석 교수와 이영덕 교수로부터 counseling과 guidance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배우면서 신학문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고 미국 유학에 대한 아득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4학년에 진급하자 이번에는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나라 일을 걱정하는 마음과 졸업 후의 진로로 초조했던 나에게 ‘실력 제일’의 슬로건을 높이 들었던 혁명 정부는 매우 신선해 보였다. 여러가지의 혁신이 과감히 진행되면서 우리 학년은 대학에서 정규적인 4년간의 학위 과정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제1회 국가 학사 자격고시를 치러야 했다. 그 합격자 발표가 있은 후 1962년 2월에 대학교를 졸업 했다.

졸업과 더불어 곧 경동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여선생을 처음으로 맞게 된 남자 중학교에서 나는 희귀동물(稀貴動物) 취급을 받으면서 매일 싸움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긴장하기는 했으나 순수한 즐거움과 보람도 느끼면서 2년을 지냈다. 그 후에 모교인 이화여중으로 전근하여 3년동안 출중한 여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 교단생활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금기를 보낼 수 있었다. 발랄하고 싱싱한 생명력에 넘치는 어린 여학생들을 앞에 놓고 나는 나 자신이 중학교 학생인 양 그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냈다. 나는 청소년기의 학생들 내부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표현력에 감탄하면서 사범대학 국어과 출신의 정신을 살려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언어교육과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문학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가르쳤다. 그 사이에 나의 동창생들은 속속 결혼을 하거나 유학을 떠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 혼자만 제 자리에서 세월을 허송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뒤늦은 자각으로 불안해졌다. 그래서 서둘러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미국대사관에서 미국 대학 안내서를 수없이 뒤적이며 counseling전공 학과가 있는 여러 대학에 지원서를 냈고 여러 차례 거절을 당하다가 마침내 메사추세츠의 휫치버그 주립대학(Fitchburg State College)으로부터 임학허가를 받았다. 내가 서울을 떠난 1968년 1월22일은 공교롭게도 김신조 일당이 서울에 잠입한 바로 그 다음날이어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 나를 태운 NW비행기는 오후 4시에 이륙했고 7시에는 대한민국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나의 비행시간이 하루라도 늦었더라면 나의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5년 동안 Fitchburg State College와 University of Virginia에서 상담과 상담자 교육을 공부하였다.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모든 일을 보다 훌륭히 이루어 내려는 미국인들의 부단한 창의성과 언제 어느 곳에서나 남을 돕기에 조금도 인색하지 않는 협조적인 생활 태도를 배웠고, 사적인 감정이나 아첨 따위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개인의 능력 대로 인정하는 학문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아름다운 학교 캠퍼스, 중후하고 품위 있는 전통, 고귀한 아카데미즘의 실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지성의 만개(滿開).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사소한 일에도 감격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도 감동을 받으면서 내가 원했던 공부를 했고 1973년 상담자 교육으로 University of Virginia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담학의 철학과 과정과 목표에 매료되어 공부를 마치고 학위를 취득하자 나는 이 학문을 한국의 대학교에 가서 가르치고 싶은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숨은 능력을 대발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상담학의 인본주의적인 철학과 이론, 인간과 인간이 이룩하는 섬세하고 신뢰로운 상담학의 과정과 목표를 우리말로 신나게 강의하고 싶은 소망으로 내 마음은 뛰었다. 감사하게도 나의 이 꿈이 이루어져서 1974년부터 3년간 서울여대 교수, 1977년부터 23년간 이화여대 교수, 1998년부터 7년간 한국청소년상담원 원장, 2010년부터는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오늘날까지 상담에 관한 일을 해오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살고 있다.

 

 

 

지난 40여년동안 상담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내가 쌓아온 상담에 대한 근본 신념은 상담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주고, 인간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학문이며 나로 하여금 성숙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는 존재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상담은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난 인간이 삶 속에 응축되어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여 자기다운 삶을 구축해 갈 수 있도록 잃어버린 자기 자신과 자기 언어를 찾아주는 섬세한 학문이다.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다채로운 내면의 세계를 인식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나는 상담학과 문학을 융합하는 ‘문학상담’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학상담은 문학의 특성을 살려서 ‘문학적’으로 하는 상담이다. 문학적으로 하는 상담이 가능한 것은 문학 속에 상담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이 있기 때문이다. 언어예술인 문학은 구체적인 묘사로 다양한 삶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상담은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신의 삶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도록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 노력한다. 문학과 상담을 융합하여 문학적으로 실행하는 상담은 더욱 깊이 있고 차원 높은 자기성찰의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는 문학상담의 구축에 전념하고 있다.

 

 

 

나의 상담인생 40년의 근본이 서울사대 국어과의 교육이었음에 늘 감사하고 있다. 


                                                      *****************************

 

 

지금 기분이 오래간만에 참 들떠 있습니다하 하  나는 영원한 '감격시대이고 구제불능의 '철부지'입니다.  하 하 하

월요일에 봅시다.

 

 

 

 

 

 

 

총장 이혜성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