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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유를 찾을 방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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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조회 작성일 16-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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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유를 찾을 방법이 있을까요?

 

자기 인생의 목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각자의 목적은 선택하는 것인가, 주어지는 것인가? 나는 일단 둘 다 맞는다고 말해두고 출발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각자 자기 인생의 목적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1960년부터 20년 동안 미국 브루클린연구소에서 아이비리그 예비 졸업생 1500명을 대상으로 ‘직업선택 동기에 따른 부의 축적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한마디로 어떤 소신 하에 얼마나 벌었는가를 알아보았다는 것이지요. 1500명의 졸업생 중 1245명(83퍼센트)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선택했고, 255명(17퍼센트)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20년이 지난 1980년, 그 1500명 중에서 백만장자가 된 사람은 101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결과가 발견되었습니다. 백만장자 101명 중 100명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사람이었고, 나머지 단 1명만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선택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통계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선택한 사람보다 ‘좋아하는 일’을 택한 사람이 의외로 크게 연연하지 않았던 백만장자가 될 확률이 100배나 높다니 말입니다.

 

대학 졸업 후 박물관에서 마룻바닥 청소를 하며 새 인생을 출발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첫날 그는 박물관장으로부터 이런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대학이나 졸업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쯧쯧.”

청년은 맑은 미소로 답했습니다.

“박물관 마루라면 다릅니다.”

청년은 매일 한 시간 일찍 출근하여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박제과에 자리가 생겨 정식 직원이 되었고 몇 년 후엔 고래를 연구, 세계적인 고래박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세계 유일의 공룡 알을 발견, 동물 연구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 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으며 세계적인 동물학자로 이름을 떨친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입니다.

 

또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자 파스퇴르는 파리의 에콜 노르말에서 물리와 화학을 공부했고,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학자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정부에서 세운 파스퇴르연구소의 소장까지 지냈지만 생활은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하루는 제자가 그의 집을 방문하고서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연구한 업적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돈 벌 생각을 안하십니까?”

그러자 파스퇴르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는 처음에 돈을 벌기 위해 과학자가 되었나? 분명 아닐걸세. 발견하는 기쁨, 진리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에 흥미를 느껴서일 거야. 내가 돈을 벌려고 마음먹었다면, 특허권을 따 엄청난 부를 쌓을 수도 있었겠지. 대신 나는 돈에만 정신이 팔려 그 많은 연구를 해내지 못했을걸세. 신이 내게 준 임무는 세계 인류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 지금처럼 이렇게 연구에 매진하는 것일세."

설령 그 결과의 차이를 무시한다 하더라도, 이 양자의 선택 사이에는 이미 과정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이 추가하는 가치에는 행복, 기쁨, 평화 등의 ‘목적가치’외 이 목적가치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부귀, 권세, 명예 등의 ‘수단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목적가치입니다. 수단가치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 저금한 100억 원은 그것이 좋은 용도에 사용되지 않으면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보람을 창출해낼 때에야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반면에 꽁보리밥을 먹어도 행복하다면 부귀나 권세가 굳이 필요치 않습니다. 따라서 수단가치에 매여서 이미 누리고 있는 목적가치를 과소평가한다면 무척 불행한 일입니다. 이미 자신이 목적가치를 이루고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각자에게 인생의 목적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이를 우리는 사명이라 부릅니다.

스위스의 저명한 심리학자 칼 융의 다음 말은, 사명 혹은 소명에 대하여 뚜렷한 느낌이 없는 독자들에게 일말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나는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이 운명적으로 내게 주어졌음을 감지했다. 그 느낌은 내적 안정감을 주었다. 비록 내가 그 운명을 나 자신에게 증명할 수는 없었지만, 운명이 내게 스스로를 증명했다. 내가 운명을 확신한 것이 아니라 운명이 나를 확신했다.”

 

선택이 되었건 사명이 되었건, 자신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은 이미 절반을 이룬 셈입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 새로운 눈으로 늘 새롭게 재조명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발견이라는 진정한 항해의 목적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우주적 여운을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난 故 스티브 잡스는 마치 단명을 자위하듯 말합니다.

“여정은(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보상이다.”

 

<출처 : 잊혀진 질문 /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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