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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사랑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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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조회 작성일 16-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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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사랑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두 아이를 잃었습니다. 불과 13개월 사이에 큰아들이 자살을 했고, 막내아들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나는 삶과 죽음에 관해 많은 것들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더없이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아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인지, 그리고 진정한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됩니다.

나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뭋곤 합니다. “내게 진정 가치있는 게 무엇인가?” 이제 “왜 하필 나의 아들들이?”라든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억울하다고 불평을 해봐야 죽은 자식들이 살아 돌아올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은 것은 나와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겪었던 사람들한테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내가 가장 증오했던 말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진다는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내 아들들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결코 예전과 같아질 수 없었습니다. 내 마음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 잘려나간 지금, 내 아들들과 함께 내 삶을 묻어버렸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아들이 죽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매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일 매시간 생각합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이 있다면, 고통스러운 병과 죽음의 이미지가 그들이 살아생전 보여주었던 온화한 기억들로 바뀐다는 사실뿐입니다.

슬픔보다 나에게 익숙한 주제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 삶의 주제였습니다. 나는 슬픔에 관한 책을 쓰면서 슬픔을 우회해서 가는 길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습니다. 슬픔을 똑바로 통과해서 가는 길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절망에 빠졌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떠한 말로도 위로를 받지 못했지만, 결국 말로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아직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따지 결국 말이 있어 그 과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처럼 아이들이 죽은지 1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아이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내 가슴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한 나 자신을 어느 정도 용서했습니다. 늙어가는 나 자신과 화해한 것입니다.

한때 자식들의 손에 의해 내 시신이 땅에 묻힐 것이라는 확신은 물거품이 되었고, 질서정연한 우주의 섭리와 공정할 것이라는 신에 대한 믿음은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희망은 아직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헤어져야만 그 진가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도 이와 상통할 겁니다. 남녀가 이별을 해야만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성숙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별은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깨닫게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을 유산처럼 남겨주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에 대한 기억도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출처 :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 고든 리빙스턴 지음, 노혜숙 옮김/ 리더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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