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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지음 이야기

내 안에 '두개의 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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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조회 작성일 16-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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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자기 안에는 ‘착한 나’와 ‘악한 나’가 있잖아요. 하지만 제 안에 있는 두 사람은 마치 탕녀와 성녀처럼 너무나 다르죠. 평소의 제 이미지는 전형적인 ‘착한 여자’랍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저의 의견이나 감정은 꾹꾹 눌러 참으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합니다. 이런 제가 술을 많이 먹고 필름이 끊기면 180도 변합니다.

아버지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버지는 저에 대해 기대가 컸어요. 저는 항상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썼고요. 제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의 기준은 언제나 아버지였고, 제 삶의 목표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아버지의 기대를 채우기에만 급급했어요. 그런 아비지는 제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폭력을 행사했어요. 주로 PVC파이프나 호스 같은 걸 테이프로 감아서 때리시곤 했는데, 그걸로 맞으면 아무리 세게 맞아도 살이 터지기는 해도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희한하게도 아버지는 엄마나 동생에게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오직 제게만 폭력을 행사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저를 성추행한 적도 한번 있어요. 정말 오래된 일인데도 그날 제가 무슨 바지를 입었는지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왜일까요? 뭐가 잘못된 건지,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술만 먹으면 돌변해버리는 저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 두명의 나

 

‘두명의 나’라고 닉네임을 쓰신 분, 자신의 양가감정에 대해 잘 인식하고 계신 점이 우선 다행스럽습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생존욕망과 죽음 욕망, 자기 보존 욕구와 자기 파괴 욕구, 현실 원칙을 따르는 본능과 쾌락 원칙을 따르는 본능 등의 상반된 힘이 공존합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학에서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의 어두운 측면이 밝은 측면과 짝을 이룬다고 해서 ‘양가감정’이라 일컫습니다. 내면에 쌓아둔 감정은 대체로 분노, 불안, 질투, 시기심 같은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이제는 바로 그 못나고 추악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어두운 측면들을 하나씩 꺼내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보살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두명의나 님은 자신의 내면에 착한 나와 악한 나, 성녀와 탕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그 존재들이 느끼는 구체적인 감정에는 닿지 못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글을 읽어보면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에 대해 그 어떤 분노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폭력을 ‘아버지가 준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엿보이며, 여전히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여 사랑받고자 하는 ‘착한 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아니는 또한 아버지에 대한 어마어마한 사랑을 내면에 감추어 놓고 있습니다.

두명의 나 님,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가지 감정을 짐작하신다면 우선 아버지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분노도 알아차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행동 속에 존재하는 사랑과 학대를 구분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해 높은 기대를 갖는 것은 자녀의 능력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자녀를 통해 자신의 실패를 보상받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뼈가 부러지지 않도록 PVC파이프에 테이프를 감았다면 그것은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치밀하고 계획적인 폭력입니다. 다른 가족에게는 그렇지 않았는데 자신에게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서 자신만을 더 사랑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제 두명의나 님은 사랑받기 위해 아버지 말을 잘 듣는 착한 딸 역할을 그만두셔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맞을 때마다 내면에 쌓여온 분노를 인식하시고, 그 분노를 꺼내 자신의 감정 속에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폭행으로부터 딸을 지켜주지 않은 엄마에 대한 분노도 알아차리셔야 합니다. 아버지뿐 아니라 엄마도, 동생도 내면의 분노를 오직 가족 중 한 명의 딸에게 투사하면서 저마다 자신들의 안전만을 지켜온 가정의 시스템 전체를 둘러보세요.

‘착한 여자’의 뒷면에 있는 ‘나쁜 여자’는 분노뿐 아니라 맞는 행위에 대한 공포와 불안, 맞지 않는 동생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 맞으면서 형성된 자기비하감과 자기 파괴적 성향들을 두루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술을 많이 먹고 필름이 끊기면 행동이 180도 변하”면서 비로소 보습을 드러냅니다. 두명의나 님이 우선 하실 을은 술 취하지 않은 맨 정신으로도 ‘나쁜 여자’의 감정 영역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일입니다. 그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자신의 것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끌어안아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와 직접 마주 않아 오래된 폭력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세요. 아버지의 변명을 듣든, 사과를 듣든, 혹은 더 큰 분노와 마주치든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하시고 그 일을 해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반응이 아니라, 가신의 내면에 있는 분노를 정당한 대상을 향해 표출하는 바로 그 행위입니다.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전문적인 심리 치료를 받아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또 한가지 권해드리고 싶은 것은 연인을 만들고 사랑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내면에 억압된 ‘탕녀’의 욕망을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대상과 나누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두명의나 님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정서적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연인을 만들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을 해보지 않으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상대와 서로 사랑하는 경험을 하신다면 내면에 억압되어 있다가 술이 취했을 때 표현되는 행동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때는 꼭 주의하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두명의나 님은 무의식적으로 고통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을 선택할 때도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 끌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점을 유념하셔서 즐거움, 만족감, 편안함을 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사랑뿐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나 세상살이에서도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늘 유의하셔야 합니다.

내면에 억압해둔 어둡고 위험한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밝고 건강한 의식 속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양가감정을 통합한다’고 일컫습니다. 양가감정을 통합하면 자아가 강해집니다. 내면을 억압하는 데 쏟던 에너지를 거두어 자아가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양가감정을 통합하면 또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이 됩니다. 억압하고 외면해둔 내면에는 엄청난 지혜와 창조성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게 되며, 그때 진정한 마음의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 출처 : 천개의 공감 / 김현경 저, 한겨레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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