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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지음 이야기

[마음 이야기] 우울증과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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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조회 작성일 16-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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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소위 왕자나 공주라고 할 만한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내가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한

환자는 어떤 여인이었다. 이 환자는 다른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우울증을 관리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그런데

좀 더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찾은 것이다. 거의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나서 어느 날 그녀는 아이들과의 아주

복잡한 문제들을 털어놓았다. 관심은 매우 높은 것 같았지만 그녀로서는 문제를 어찌 해야 할지 몹시 막연했다. 문제를

검토하던 중에 그녀는 “오, 하느님! 치료가 끝나면 기쁠 거 같아요.!” 하고 외쳤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치료가 끝나면 좋을 거예요. 더 이상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현재의 모든 고통은 물론이고 미래의 고통까지도 깡그리 날아가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환상이다. 그녀는 이런 환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왕자나 공주가 흔히 빠지는 환상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환상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하려면 아동심리에 관한 배경지식을 약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태어난

첫해에 유아들은 소위 자아영역을 알게 된다. 이것을 알기 전에는 자기의 손이 엄마의 손과 다르다는 것을 실제로 인식하지

못한다. 태어나서 2년째가 되면 비록 아직은 자신의 힘이 미치는 영역은 아니지만 물리적인 영역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유아들은 부모나 친지, 개나 고양이를 사적인 친위대의 졸병쯤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이 미운 두 살 동안 엄마나 아빠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안 돼, 안 돼. 엄마 아빠는 널 무척 사랑하지만 그러면

안 된단다. 네 맘대로 해서는 안 돼.” 이러는 과정에서 아이는 심리적으로 사성장군에서 사병으로 추락한다. 그런 까닭에

세 살의 특징인 우울증과 울화증이 이때에 나타난다.


그렇지만 부모가 아이를 부드럽게 대하고 이 힘든 시기를 가능한 한 잘 헤쳐 나와 미운 세 살을 잘 넘기도록 돕는다면

아이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큰 발전을 이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항상 이런 식으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부모는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 시기의 아이에게 온화하게 대하지도,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아이를 자극한다.


심리치료가 끝나면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환상을 가졌던 그 환자는 대강 짐작으로도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서너 살 때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부모에게서 특별한 벌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벽에 걸려

있던 회초리를 아버지에게 가져다주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가 때리는 것을 멈출 때까지 오랫동안 매를 맞았다.

매질이 끝나면 회초리를 받아 벽에 다시 갖다 걸어 놓아야 했다. 그러고는 엄마에게 가서 위로를 받았다. 충분히 위로를 받아

울음을 멈추고 나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하느님께 용서를 빌어라.” 그러면 그녀는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렸다. 엄마가 보기에 충분히 했다고 판단되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일어나서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어라.” 그녀는 아버지에게 가서 용서를 빌었고 아버지가 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그녀를

용서해 주었다.


부모에게서 이런 취급을 받은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아이들은 자신의 전능함이나 나르시시즘을 포기하는 대신

오히려 집착한다. 이에 대한 심리 과정이 너무나 독특해서 정신과 의사들은 ‘가족 로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부모라는 이 사람들은 사실은 내 부모가 아니야. 난 정말로 왕과 여왕의 딸이고

귀족의 혈통을 가진 공주야. 언젠가는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 거야. 그때 가서야 나는 진정한 내가 되는 거야.”


이러한 환상은 아이들이 수치심을 극복하는 데 상당한 위안을 준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환상은 아이들을

왕이나 여왕에게 데려다 주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그들을 진짜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우울증에 빠진다.

우울증 환자들이 겪는 인식의 어려움 밑바닥에는 자신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이러한 환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존재한다. 물론 이 사람들은 부정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부정적인 것을 선택적으로 지각하고

그들의 고귀한 권리여야 하는 긍정적인 것은 지각하지 못한다.


브라질 출신의 노베르토 케페라는 정신과 의사는 인간의 정신 질환 중 가장 흔한 것은 소위 자기를 신이라고 믿는

종교광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다는 과대망상 말이다. 이러한 종교광은 왕자병이나 공주병과 상당히

유사하다.


우리 모두는 종교광, 즉 삶이라는 드라마에서 대본까지 쓸 수 있다는 환영을 끊임없이 움켜쥔 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대본에 써 놓은 대로 또는 바라는 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분노하고 우울해하고 심하면 겁에 질린다. 사실

인생이란 우리가 벌이는 쇼보다 휠씬 더 크다는 사실을 대다수 사람들은 순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순응하지

못하면 배울 수도 없다. 진짜로 무언가를 배워 성장하려면 예전에 누군가가 “인생에서는 뭔가 다른 것을 계획해 놓으면

뜻밖에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라고 말했듯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 끝나지 않은 여행> M. 스캇 펙 지음 | 조성훈 옮김 | 율리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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