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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야기-2] 애도는 나선계단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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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조회 작성일 20-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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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나선 계단 같은 것


슬픔이나 실연감을 겉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관습에
더 많이 지배당하고 있는 남성들이
애완동물을 잃었던 경험을 얘기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어렸을 때 길렀던 강아지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를 얘기하다가
그 강아지가 죽게 된 사연을 코믹하게 얘기하며 크게 웃기도 합니다.
등하교 길에 가장 먼저 나와 반겨주던 강아지가

어느 날은 더 이상 달려 나오지 않았는데,

대신 아버지가 어른들과 마루에서 술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며, 술자리에서 술김에 잃은 강아지 이야기를
시종 코믹하게 묘사하던 이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비단 강아지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살면서 잃어버린 모든 것들에 대한 표상이거나 환유였습니다.
 잃어버린 부모, 사랑했던 연인, 짓밟힌 자존심, 실직, 실패의 경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오직 강아지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 애도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이루어지면서
현대 심리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은 애도가 특별한 감정의 단계가 아니라
‘도식화할 수 없는 감정 모음, 혼란스러운 감정덩어리’ 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상실을 박탈과 결핍으로 구분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박탈은 사랑하는 대상 자체를 상실하거나 뺏긴 상태이고,
결핍은 사랑의 대상은 존재하지만 보살핌이 부족하거나
사랑이 왜곡되게 전달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박탈과 결핍은 모두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박탈당하거나 사랑의 감정이 결핍된 양육은
심각한 마음의 문제를 낳습니다.
특히 성장기에 상실을 경험하고 그 상실감이 보살펴지지 못하면

애도반응으로 나타나서 왜곡된 정서가 성격의 일부로 굳어지기도 합니다.

생을 그르치게 하는 문제와 맞닥뜨릴 때, 그 문제의 핵심에는 늘
제대로 해결하지도 떠나보내지도 못한 과거의 상처가 존재합니다.

 

 

 

 

 심리치료는 그러므로 미뤄둔 애도를 뒤늦게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처 입은 곳으로 돌아가
그 때 충분히 슬퍼하며 울지 못한 울음을 다시 우는 작업입니다.


뒤늦게라도 잘 슬퍼하고 떠나보내야 할 이별의 대상은

부모, 형제, 연인 뿐 아닙니다.

프로이드가 말했듯이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 에 대해서도 애도해야 합니다.

정체성의 일부인 직장, 직위, 명예 등을 잃었을 때,
젊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자기를 떠나보내야 할 때,
생의 한 시기에 온 힘을 다해 몰두했던 꿈, 목표,
연극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을 끝냈을 때,
고시공부에 몰두한 이들이 시험에 합격했거나 불합격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착의 감정을 품었던 모든 대상에게
이별 후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은 대체로 비슷하며
그것은 해결해야 하는 심리적 문제를 남깁니다.


출처 : 좋은 이별.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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